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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군인과 게임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plus.kr
  • 입력 2014.07.1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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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유의 달달한 맛으로 한약을 달일 때,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게 ‘감초’다. 얼마나 많은 곳에 들어가길래 오죽하면 ‘약방의 감초’란 속담이 생겼을까.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사고의 근본 원인을 규명할 때, 게임은 마치 약방의 감초처럼 거론되고 있다.
얼마전 동부전선 GOP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지자 한 업계인은 자신의 SNS에 “또 게임을 걸고 넘어지겠군”이라며 우려섞인 멘트를 남겼다. 그로부터 채 몇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군사 전문가라는 한 사람이 TV에 출연해 이번 사건은 게임이 원인이 된 것 같다며 몰지각한 추측을 내뱉고 말았다. 명확한 근거도 타당한 이유도 없는 그의 추측성 발언은 보수 언론들에게 좋은 꺼리를 제공했고 그들은 임병장을 하루 12시간씩 총쏘는 게임에 몰입했던 청년으로 만들어냈다.
얼마전 미국 뉴욕주립대의 매튜 그리자드(Matthew Grizzard) 교수는 의미심장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의 논문에 따르면, ‘폭력적인 게임을 플레이한 사람들은 도덕적 감수성이 풍부해진다’는 것이다. 매튜 교수는 실험 대상자들을 테러리스트 진영에 소속시켜, 유엔평화유지군과 게임 내에서 교전을 벌이게 했다. 게임을 플레이한 후, 도덕적 감정을 면밀하게 측정하는 다양한 조사를 벌인 결과, 과도한 폭력이 들어간 게임은 인간의 도덕성을 높인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매튜 교수는 “폭력성 짙은 게임을 플레이한 후 대상자들은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 죄책감은 두가지의 특정한 감정 영역과 관련있다는 점을 우리는 발견했다. 하나는 사람을 배려하려는 감정이었고, 또 하나는 공정성에 기반을 둔 상호 이익의 감정이었다” 라고 말했다. 게임 내에서 상대편을 총으로 쏴 쓰러뜨린 후에 이를 현실 세계에 대입시켜, 동료 병사들에게 조준사격을 했을 것이라는 그 전문가의 발언은 역시나 바보같은 추측일 뿐이었다. 작년 5월에 발표된 적 있는 ‘폭력적인 게임은 청소년들이 잔인한 행위를 하는 것을 둔감하게 만든다’는 어느 학자의 주장 또한 이번 조사로 보기좋게 뒤집어졌다.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그렇다고 믿으면, 모든 생각과 행위를 한 지점으로 몰아가는 성향을 가진 이들이 있다. 게임은 그런 성향의 사람들 때문에 이유없는 뭇매를 맞고 있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임병장이 총쏘는 게임을 열심히 했다면, 죄책감과 상호 이익에 관한 감정을 품게 돼 그런 엄청난 사건을 저지르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게임의 긍정적인 면은 매튜 교수의 조사 말고도 무수히 많다.
예를 들어 VIP의 경호를 맡은 요원이라면, 그들은 유사시에 VIP를 대신해 총탄을 맞을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인간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자신의 신체적인 위험을 피하도록 프로그램화된 본능적 충동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어떤 트레이닝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의 온몸을 내던지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일까. 경호 훈련의 핵심은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시뮬레이션에 있다고 한다. 이것은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영화의 한장면처럼, 적들을 응시하며 사격을 할 수 있는 담력을 가진 병사는 실제로 그리 많지 않다. 폭력이 개입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반복적인 예행 연습을 통해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반복적인 시뮬레이션은 인간 두뇌의 배선을 변화시켜, 바닥에 엎드려야할 상황에서도 용감하게 뛰쳐나가도록 만든다. 게임은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 간접적 위험을 감수하도록 가르치며, 그로 인해 실제로 위험한 상황에서도 학습한 대로 대처하게 만드는 기능이 있다. 경찰이나 군인, 경호원 등 언제나 위험이 도사린 현장에서 근무하는 직업군일수록 결국 게임으로 실제 상황에 대처하는 훈련이 필요한 셈이다. 색안경을 벗어버리고, 제대로 된 시각으로 게임을 바라봐주길 우리는 간절히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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