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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장인정신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plus.kr
  • 입력 2014.01.02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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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선 효자 게임 ‘스트리트파이터’ 시리즈에 모든 전력을 집중했다. 난다긴다하는 베테랑 크리에이터들을 모았고 그들은 그야말로 최강의 드림팀이었다.
반면 우리팀에는 새파랗게 젊은, 개발의 개자도 제대로 모르는 신인들의 집합소였다. 경험이 좀 있다고 우리팀에 배속된 이들은 모두 ‘좌천됐다’고 느끼며 불만이 가득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우리팀은 새로운 하드웨어인 ‘플레이스테이션’용 게임을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다. 새로운 게임기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었고 개발 장비도 태부족이었다. 팀원들간의 의견 충돌도 잦았고 우리들은 솔직히 팀에 대한 소속감이나 자신감도 없었다.

또 다른 개발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는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이 팀에 배속돼 프로그래머로서 엔진 개발 등 시스템 전반을 담당하고 있었다. 회사로서는 최초의 3D게임 개발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될 것”이라는 예측은 상상할 수도 없었고, 실제로 프로그램을 짜보고 비교하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 다만 경험이나 노하우가 없었기 때문에 큰 선입견없이 개발이 가능했다는 점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올해로 탄생 17년째를 맞은 캡콤의 호러 어드벤처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첫발은 의외로 평탄하지 않았다는 걸, 개발자들의 증언을 통해 느낄 수 있다. 결국 지금은 대작의 반열에 오른 바이오하자드는 당시 처음 발매된 플레이스테이션에 신작 게임을 공급하기 위한 ‘되면 좋고, 안되도 큰 문제 없는’ 실험작이었던 셈이다.
캡콤으로서는 예기치않던 의외의 수확이 된 바이오하자드는 17년동안 다양한 기종으로 86종의 게임소프트로 만들어졌으며, 전세계적으로 수천만개가 팔려나갔다. 그 인기에 일조한 것이 헐리우드 영화였다. 총 7편의 영화로 제작된 바이오하자드는 브랜드 가치 향상에 큰 역할을 해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가정용 게임기가 보급된 선진국은 물론이고, 게임기의 보급이 어려운 나라에도 바이오하자드는 영화로 상영됐기 때문이다.

캡콤이 바이오하자드를 영화로 만들게 된 목적은 게임과 영화 두 미디어의 프로모션 연동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자는 데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행운의 여신은 캡콤에게 다가왔다.  첫작품의 감독을 맡은 ‘폴 앤더슨’과 주인공 ‘밀라요보비치’가 원작 게임의 열광적인 팬이었던 것이다. 그 덕에 감독과 배우는 작품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고, 전세계 흥행수입은 1억 달러를 넘기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바이오하자드의 무비 시리즈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헐리우드의 큰 손들은 캡콤의 콘텐츠라면 영화에서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인식이 생겨났고, 이후 ‘데빌메이크라이’나 ‘로스트플래닛’마저도 영화화 제안을 받게 됐다.
바이오하자드가 17년간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에는 영화보다 더 큰 것이 있다. 바로 특유의 세계관이다. ‘공포’는 전세계 어디서나 통할 수 있는 소재지만, 바이오하자드는 억지스러운 공상에 의한 공포스러움을 철저하게 배격했다. 예를 들면, ‘바이러스로 인한 재앙’이라는 설정처럼 어찌보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기막힌 기획으로 말이다. 현실감 넘치는 공포 스토리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에게 보다 큰 두려움과 짜릿한 쾌감을 선사했다. 또한 첫작품은 회사에서 조금은 소외된 아웃사이더 개발진들에 의해 만들었지만, 새로운 시리즈가 기획될 때마다 프로듀서와 개발팀이 새롭게 세팅됐다. 어찌보면 위험해 보일지 모르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바이오하자드스러움’이라는 전통적 공포의 맛에, 균형감을 잃지 않는 새로운 개발자들의 개성이 가미돼, 릴레이처럼 항상 신작의 느낌을 줬다. 공포 게임의 대명사 ‘바이오하자드’는 이렇듯 우직한 외길걷기에 의해 탄생됐다.
가업(家業)이라면 한눈 팔지 않고 소중히 계승하는 일본인 특유의 국민성이 게임계에도 깊게 뿌리내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일본 게임을 시리즈 우려먹기라 비판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개발 히스토리를 곰곰이 살펴보면 우리가 배워야할 점이 더 많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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