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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착각의 밥그릇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plus.kr
  • 입력 2013.12.0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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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린 시절만 해도, 필름을 끼워넣는 사진기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 중에서도 필름은 ‘코닥’이라는 인식이 뇌리 속 깊게 박혀있었다. 그도 그럴 만했던 게 어른들이 필름을 사오라고 할 땐, “코닥 필름 한통 사오라”고 했으니, 코닥은 필름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코닥은 ‘조지 이스트먼’이란 사람이 1888년에 세운 사진의 혁명을 이끈 회사다. 1976년 코닥은 필름 시장에서 90%, 카메라 시장에선 85%의 점유율을 차지할 정도로 절대적 공룡 기업이었다. 그랬던 코닥이 2012년 맨하탄 법정에 파산신청을 낸다. 필름을 넘어 사진의 대명사로 불리우던 코닥이 디지털 시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결국 파산에 이른 것이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 중 하나가, 세계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만든 곳이 바로 코닥이라는 사실이다. 코닥의 수뇌부들은 카메라 산업에서 디지털 시장이 커질 것을 누구보다 먼저  예측해 1975년 세계 최초의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했다. 이는 소니보다 6년이나 빠른 시점이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 있었다. 코닥은 경쟁 회사들보다 소극적인 마인드로 스스로 처음 만든 디지털카메라가 기존의 자신들이 선점하고 있던 필름 시장을 잠식할 것을 우려했다. 코닥은 미래에도 사람들이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현상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어쩌면 끊임없이 자기최면을 걸었는지도 모른다. 코닥은 오히려, 디지털카메라 기술은 꽁꽁 숨겨둔 채, 필름 카메라의 연구 개발에 더욱 몰두했다.

당시 코닥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던 일본 후지필름은 미국에 생산 라인을 구축하며 시장 파이를 늘려갔다. 코닥은 이런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서 그저 앞만 보고 달릴 뿐, 그  이상의 것들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던 것일까. 1980년대 후반부터 소비자들이 디지털 카메라로 움직이고 있다는 시장의 신호를 무시하다가 소니 등 새로운 경쟁자들이 우후죽순 튀어나오자 1990년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 헐레벌떡 뛰어든다.
 창고 속 깊숙이 숨겨뒀던 15년전 디지털 카메라 기술로는 이미 시장을 선점한 경쟁자들과 싸움이 되지 않았다. 필름 비즈니스에 대한 미련과 업계 최고라는 오만함이 코닥을 나락의 길로 인도한 셈이다. 부자는 망해도 삼대를 간다는 속설을 비웃기라도 하듯, 132년이나 고공 비행하던 코닥의 몰락은 이처럼, 그리 길지 않았다. 

반면, 코닥의 라이벌이던 후지필름은 세상의 변화에 맞춰 과감한 변신을 추구했다. 그들은 필름 개발에 필요한 20만 점의 화학물질을 이용해 제약과 화장품 사업에 과감하게 뛰어든다. 코닥과는 상반된 행보였다. 필름의 핵심 재료인 콜라겐을 활용해 화장품을 만들었고, 사진 변색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항산화 물질은 피부 노화방지제로 탈바꿈했다. 또 투명성, 얇은 두께와 일정한 표면을 유지시키는 후지의 기술은 LCD패널의 소재 개발에 활용됐다. 거기에 필름 기술과 디지털 광학 기술을 접목해 의료기기 사업에서도 승승장구했다. 사업 다각화에 성공한 후지는 동료이자 라이벌이었던 코닥의 침몰을 멀찌감치서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을 지도 모른다.
뉴욕 파슨즈대학 전략디자인경영학과 에린 조 교수는 자신의 저서 ‘아웃런’에서 “혁신은 미래의 상황을 그려내는 것이고, 미래는 과거 현상의 반복이 아니다. 코닥이 과거 성공했던 모델에 대입해 미래 전략을 짜낸 것은 가장 무서운 오류”라고 지적했다. “기업의 수뇌부가 자신들의 가설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받아들이면, ‘미약하지만 중요한’ 단서들을 무시하게 되는 경향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우리 업계에도 한 두종의 게임으로 대성공을 이뤄낸 기업들이 꽤 많다. 그러나 하룻밤 사이도 바뀌는 시장 트렌드를 코닥처럼 흘려보내서는 안된다. 영원할 것 같은 착각의 밥그릇을 언제까지나 움켜쥐고 있는다면, 코닥의 전철을 밟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있는 기업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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