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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으로 만나는 신파극 ‘잊지마, 어른이 되어도’

  • 안일범 기자 nant@khplus.kr
  • 입력 2022.01.17 18:36
  • 수정 2022.01.1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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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기억을 유지한 채 과거로 돌아가면 어떤 기분일까. 흔히 술자리에서 혹은 친구들과 농담처럼 던지는 이야기다. 기자는 항상 절대 가지 않는다를 선택했다. 그도 그럴것이 어린 몸뚱아리로 살아야 하고, 시험을 다시 봐야 하고, 군대를 다시 가야 한다. 쌓아온 것들을 모두 부정하고 처음 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삶. 지금 처럼 운이 좋을리 만무하다. 높은 확률로 방구석 폐인으로서 살아가지 않을까. 그런 위험을 다시 감내할 수는 없다. 아직도 삶은 계속되니 말이다. 

반면 누가 봐도 과거로 돌아 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끔찍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면 뭐든 헤야될터다. 이 게임이 그렇다. 제목 부터 심상치 않은 ‘잊지마, 어른이 되어도’이야기다. 

사진 출처=스팀
사진 출처=스팀

주인공 미나토는 초등학생이다. 아버지는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고, 여동생은 (백혈)병을 앓고 있다. 어머니도 역시 몸이 좋지 않은데, 아무래도 유전병인것 같다. 그렇다보니 기증자가 필요한 상황. 우연히도 이들은 고향 마을을 방문해 위령제에 참가한다. 주인공은 여동생과 함께 아버지를 찾는 계획을 세운다. 단서를 쫓아 방문한 곳은 마을에 위치한 작은 신사. 이 곳 주지스님은 미나토를 알아 본다. 특이한 성씨 때문이다. 주지 스님은 아버지가 죽었단 사실과 함께 유품인 수첩을 전달한다. 수첩에는 7대 불가사의가 적혀 있다. 이를 추적한다면 아버지에 대해 알지도 모른다. 난데 없이 신사 뒤편에 위치한 큐브를 집었더니 33년 뒤의 나로 부터 메시지를 전달 받는다. 7대 불가사의를 풀면 아버지를 살릴 수 있고, 여동생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제 시간 여행과 함께 행복을 찾아 떠나는 모험이 시작 된다. 

사진 출처=스팀
사진 출처=스팀

게임은 198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삼는다고 한다. 오래된 시골마을을 연상케 하는데 맵을 둘러 보면 결코 낯설지 않다. 추억속 굿즈들이 대거 등장해 상상력을 자극하며, 친구들과 함께 노는 모습들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추리하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밟는다. 그렇다고 해서 복잡한 요소들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이동하고 대사를 잃고 시나리오를 풀어 나가는 게임에 가깝다. 일부 수집 요소가 존재하나 역시 대세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렇게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아버지의 이야기, 어머니의 이야기, 7대 불가사의 정체, 미나토의 이야기 등을 들어 보는 게임이다. 

거두절미하고 게임은 과거 쌍팔년대에 유행했던 신파극의 전형을 게임으로 담는다. 불우한 가정환경, 숨겨진 비사,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 반전 등은 몇 번은 봄직한 스토리라인의 전형을 유지한다. 추억이라는 방패와, 가족이라는 무기를 들고 열심히 포장하지만 많이 본 클리셰들이 덩어리로 뭉쳐 있다. 오랫동안 관련 장르를 접해본 이들에게는 식상한 장르에 가깝다.그렇다보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게임의 흐름을 연상케 하는 부분이 있다. 이들이 보여주는 노림수는 명확하다.

사진 출처=스팀
사진 출처=스팀

개발사의 과거를 보면 이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게임 ‘잊지마, 어른이 되어도’는 일본 개발사 가겍스(GAGEX)가 개발한 인디 게임이다. 이 개발사는 주로 감성적인 주제를 기반으로 삼아 짧은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는 게임을 기반으로 한다. 개발사는 뭔가 작정한 것이 틀림이 없다. 할머니 이야기, 구멍가게 이야기, 오뎅집 이야기 등을 치밀하게 내놓고 있다. 대부분 어디서 많이 본 스토리라인을 짜깁기해 내는 편인데, 이 부분이 오히려 통용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개발사가 내놓는 작품들은 하나같이 저퀄리티 그래픽에 낮은 수준 기술력으로 점철돼 있다. 플레이타임을 늘리기 위해 이동 속도를 제한한다거나, 싸구려 영상을 억지로 질질 끌면서 틀어 주는 것과 같은 연출은 좀처럼 납득하기 힘들다. 일부 작품에서 매출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기술력에 거의 투자를 하지 않는 행보를 보인다. 과거 신파극을 찍어내던 영화계의 쓰라린 단면을 게임에서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모델로 긍정적인 평가를 하기는 어렵다. 

이 같은 장르는 너무 식상한 탓에 좀처럼 나오지 않았던 장르다. 소위 즙짜기 장르로 불리면서 관객들이 서서히 외면하기도 했다. 때문에 이 장르를 처음 접하는 신세대에게는 오히려 희소성을 띄는 설계일 수 있다. 또, 오래된 게이머들에게는 오랜만에 접하는 신파극일수도 있으니 니즈는 분명히 있는 장르다. 게임은 2020년 일본에서 구글 플레이 인디게임상 부분을 휩쓸고 이제 1월 13일 스팀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돼 유저들을 만났다.

만약 이 게임이 마음에 들었다면, 제대로된 신파 장르를 접해보기를 추천한다. 싸구려 그래픽에 어설픈 작법으로 구성된 게임이 아니라 아름다운 미장센과 BGM을 기반으로 심혈을 기울여 가공한 고전 RPG나 영화를 보거나, 심미성이 있는 문장으로 작성된 소설들을 보기를 추천한다.

‘잊지마, 어른이 되어도’는 눈물을 흘리기에는 적절한 작품이다. 그러나 과연 이 작품이 명작 반열에 들만한 작품인가 하면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비평을 담당하는 기자 역시 같은 이유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이번 작품으로 매출을 확보한 개발사가 다음에는 좀 더 나은 그래픽과 스토리텔링으로 도전하는 자세를 보여 주기를 기대해 본다. 한 길을 오랫동안 파고, 또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 장르가 다시 부활하게 되는 계기를 남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먼 미래에 다시 ‘잊지마, 어른이 되어도’ 리마스터가 성사 되면 기자도 기꺼히 엄지손가락을 들수 있을 것이다.

[경향게임스=안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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