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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 스튜디오 단편 웹소설] 붉은 두 점의 비밀 #1

아크 스튜디오 대표 작가: 이도경

  • 게임이슈팀 기자 press@khplus.kr
  • 입력 2021.10.29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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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혹시 이런 말 들어본 적 있나? ‘칸다스 꽃 알기가 엘프의 속 알기와 같다’라는 말.”
“그거 레코스 지방의 속담 아닙니까.”
처음에는 이 영감탱이가 또 술에 취해서 시답잖은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단골이 된 이 선술집 ‘바람걸이 동’의 4번 테이블을 매일 차지하고 고주망태가 되어 있는 영감탱이.
옛날엔 제법 이름 날리던 모험가였다는데, 지금은 매일 고주망태가 되어 실없는 소리만 지껄여대고 있다.
뭐 가끔은 정말로 희한하게도 귀한 정보를 말해주기도 해서 이렇게 가끔 술 상대나 하고 있는데, 그래 봐야 100에 99는 술 취해 흘리는 헛소리다.
그래도 이렇게 혼자 술 마시러 올 때 재미있는 말동무가 되어줘서 어울려주곤 한다.
“칸다스 꽃은 겉은 아름다운데 속의 달콤한 꿀은 맹독으로 유명하잖슴까. 엘프들 속내를 알 수 없다는 뜻이잖아요.”
“으히히히! 그렇지 엘프들의 그 꽃다운 외모 안에 무슨 시커먼 속내가 있을지 모른다는 뜻이지! 참으로 딱 맞는 말이 아닌가!”
“그런 소리 하면 종족차별입니다. 엘프들이 얼마나 많은 걸 해주는데요.”
엘프들이 숲에서 나온 것은 200여 년 전 제국과 맺은 교류 협정에 의한 것이었다.
그 어떤 종족보다 아름다운 용모에, 수백 년을 살아가는 긴 수명. 그 덕에 온갖 마법과 연금술에도 해박해 엘프와 접촉한 이후 제국은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 
“엘프들이 전해준 마법과 연금기술들 덕에 이렇게 발전하고 있는 거고, 제국도 마족들의 침공을 효과적으로 막고 있지 않습니까. 그야말로 성자나 다름없을 정도로 인간들에게…….”
“온갖 것을 다 해주고 간도 쓸개도 다 빼줄 듯이 해주고 있지! 캬하하, 내가 인생을 좀 살아봐서 아는데, 그런 놈들은 꼭 구린 구석을 숨기고 있는 법이거든…… 세상에, 공짜로 좋은 일 해주는 놈들 따윈 없어!”
“거 곡절 많은 인생 가지고 다른 사람을 재단하진 마시죠.”
쨍, 나는 입을 조용히 다물길 바라며 그와 술잔을 나눴다.
“푸하! 이거야 자네 엘프에 푹 빠졌구먼. 그래!”
“몇 번 같이 일해봐서 말입니다. 그야 저도 처음엔 조금 의심했지만, 진짜 성인군자가 저런 건가 싶을 정도예요.”
얼마 전부터 우리 파티에 들어온 엘프 ‘누니안.’ 파티의 부상을 회복시켜주는 마법에, 각종 가호까지 내려주고 온갖 지식으로 돕고 있다. 
지금은 우리 파티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분이다. 그래서 엘프의 험담을 하는 말을 들으면 좀 불쾌하다.
“킬킬…… 뭐 좋아, 그럼 옛날얘기를 해주지.”
그러며 그는 문득 술잔을 내리고, 내게 고개를 가까이 대었다. 광휘석 불빛이 그에게 드리워져 그림자를 만든다.
“내가 모험가 시절 던전이나 유적에서 나온 유물들을 조사하는 고고학자가 있었지. 다들 돈도 안 되는 유적 붙들지 말고 쓸 만한 아이템이나 신경 쓰라고 타박했지. 이상한 녀석이었어.”
“하긴 지금도 던전 고고학자는 별종 취급이죠.”
“뭐 그러다 뭐냐, 하늘다리라고 부르는 유적이던가? 거기서 그 녀석이 흥미로워하던 유물들이 쏟아져 나와서 그 녀석 진짜로 미친 듯이 파고들더군! 캬핫.”
잔 가득한 술이 그의 입으로 들어간다. 
“후우…… 뭐 아무튼 그렇게 해서 녀석은 자기 연구 성과를 신나서 우리한테 떠들어 대더군.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일부분에?”
“교단 놈들은 세상의 역사가 2천 년이라고 하지! 하지만 그 녀석은 아니라고 했어. 그건 ‘인간’의 역사일 뿐이라고. 세상은 그보다 더 오래되었다고 말이지.”
“그거 교단 사람들 앞에서 말했다간 이단으로 철퇴 맞을 겁니다.”
“그때라고 다르진 않았지! 그래도 놈은 입을 멈추질 않았어! 놈은 자기가 찾은 유물이 무려 5천 년 전의 것이라고 하더군! 그리고 말했어, 인간 이전의 인간이 있다고. 지금 우리보다 더 고도의 문명을 가진 놈들이 있었다고 말이지!”
탕, 그의 손에 들린 잔이 내려지며 소리를 냈다.
“아니 뭐 그거야 지금도 몇몇 학자들이 주장하는 거 아닙니까. 교단은 그걸 이단으로 탄압하려 하고. 그래서 대관절 그 옛날이 어쩌고 하는 것과 무슨 관곕니까?”
“아 거 젊은 놈이 되게 보채는구먼! 이제부터네 이야기는! 한잔 더 따라봐! 맨정신으론 못할 얘기니!”
언제까지 이 영감탱이의 헛소리를 들어줘야 하나, 한숨을 쉬며 한잔 더 따라주었다.
“그 녀석이 말이지, 어느 날부터 그즈음 슬슬 쉽게 보이기 시작하던 엘프들을 피하기 시작했네. 아니, 혐오 같은 게 아니라… 그건 분명히 공포였어.”
“허어.”
“엘프만 보이면 기겁을 하며 도망쳐 숨어드는 정도니, 이상하지 않나? 엘프를 혐오하는 놈들은 많아도 그 정도로 무서워하는 놈들은 없잖나?”
문득 술잔을 든 그의 손이 떨려온다. 술 중독에 걸린 자들의 수전증이다.
“뭐어….”
“내가 하도 이상해 물었지. 뭐 때문에 그러냐고. 저 예쁘장한 녀석들의 어디가 그렇게 무섭냐고. 그러더니 녀석이 말하더군. ‘네 눈엔 저놈들이 예뻐 보이느냐?’라고.”
“네?”
그의 눈빛에 두려움이 일렁였다고 느끼는 건 기분 탓일까.
“녀석이 말하더군. 고대의 문자도 지금의 문자 체계와 크게 다르지 않기에 해석을 할 수 있었다고. 그런데 그 문자를 쓴 고대 문명들의 생물들은 모두 달라. 적어도 인간은 아니야.”
“뭐, 예전엔 오크가 세상을 지배하기라도 했답니까?”
“오크도 고블린도 아냐, 아예 다른 생물이 문명을 만들고 있었다고 하더군.”
“뭐라고요?”
“그리고 그 문명들, 3천 년 전, 5천 년 전, 7천 년 전의 문명들의 기록은 항상 어떤 존재들을 찬양하고 있다가 갑자기 기록이 끊겨버리더라고 하더군. 마치…… 그 순간에 전부 사라져버린 듯 말이야.”
딸랑, 유리잔이 소리를 낸다.
“고대 문명들이 찬양하던 존재들의 이름이 있네. 지고의 존재들, ‘예르후’, ‘에하’, ‘으르프’…모두 같은 어원에서 따온 거지.”
“설마… 그래서 그 어원에서 따온 게, 엘프라는 겁니까?”
“눈부시게 아름다운 용모, 그 끝을 알 수 없는 늙지도 죽지도 않는 수명을 가진 지고의 존재며 우리를 가르쳐주는 아낌없는 자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소리 아닌가?”
“뭐어… 하지만 그건 그저 우연일 수도 있잖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기록을 찾던 중, 훼손된 기록들 사이에 하나를 찾아냈지. 거기에 적혀있는 말은 이랬다는군.”
『그들을 믿지 마라
살아있는 것은 영원히 살아갈 수는 없다.
그들은 그저 몸을 새로이 갈아타는 것일 뿐.
경계하라. 그들은 살아있으되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니.
경계하라. 그들이 뒤를 노리는 밤의 어둠을
그들의 뒤에 있는 붉은 두 점을 경계하라』
“…….”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듣게 되다니.
“그 녀석… 언젠가 유적의 깊숙한 곳으로 떨어졌다고 하더군. 그곳에서 발견한 거야…. 수많은 유리관… 이상한 액체가 흘러나오는 그것들… 그리고, 썩고 문드러지고 미라가 된 수많은 ‘유체’들….”
문득 그의 손이 떨려온다. 술 중독의 수전증관 다르다.
그의 손과 이마에 식은땀이 흐른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몸’을 바꿔온 거야… 그들의 목덜미, 붉은 두 점… 부식되기 시작하는 육체를 새로운 것으로 갈고… 그걸 반복하다 한계가 온다면… 그때는…!”
“저, 저기 영감?”
“목덜미 뒤의 붉은 두 점… 그 유체들, 고대의 지배자들의 몸을… 그 ‘뱀들’을 이용해…….”
그의 눈에 광기가 흘러나온다. 사시나무 떨리듯 떠는 그 사이로 번뜩이는 광기의 불빛이 나를 두렵게 만든다.
“그들은 수확하는 거야…… 우리가 돼지를, 닭을 키워 잡아먹듯이…… 그들은 그렇게 이 세상의 지배적인 문명을 만들고…… 키워내고…… 그리고 차지하는 거야, 그들의 지위를! 그들의 세상을……!”
어느새 나도 그의 말에 손을 떨게 된다.
“그리고 모든 걸 알게 된 그 녀석은, 그 ‘뱀’을 자신의 목에…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등줄기에 마치 아이스 볼트가 관통하는 것 같은 섬뜩함이 전율하듯 일어난다.
“-하아….”
그러더니 그는 별안간 깊은 한숨을 내쉰 뒤 군데군데 빠진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히히히… 어때, 재미있었는가?”
그 기분 나쁜 웃음이, 차갑게 굳어가던 내 등줄기를 겨우 풀리게 했다.
“자네 겁먹은 얼굴은 처음 보는구만! 와이번 사냥을 간다고 할 때도 안 하던 얼굴이 말이야!”
“이 영감탱이가 정말!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댁이 잘못될까 그게 겁난 거요!”
낄낄거리며 웃는 그 영감탱이가 화나 자리에서 홱 일어났다.
“쓸데없는 얘길 하고 술맛 떨어지게! 젠장, 다신 술 상대 안 해줄 테다!”
“캬하하핫! 난 덕분에 술맛이 나는구만! 재미있었네! 잘 가게나!”
나는 쾅 소리가 날 정도로 세차게 의자를 밀고는 술집을 떠나버렸다.
“밤의 어둠을 조심하게! 그들이 자네의 몸을 빼앗기 전에!”
빌어먹을 영감탱이, 나중에 꼭 만드라고라 즙을 탄 술을 먹여버리겠어. 
나는 이를 갈며 바람걸이 동을 나와 밤길의 숙소로 돌아왔다. 침대에 눕고도 분이 안 풀려 한참을 천장만 노려보았다.
주정뱅이에게 농락당한 분노가 조금 가라앉고 나자, 문득 하나의 의문이 떠올랐다.
‘그 표정이 주정뱅이 영감탱이가 연기로 낼 수 있는 표정이었던가?’
나도 나름 짬이 찬 모험가다. 두려움에 가득 찬 절망적인 표정 정도는 몇 번이고 봤다.
그 영감이 짓던 눈빛은, 진심으로 두려운 것을 본 눈빛이다.
몬스터에게 뜯어먹히는 동료의 시체를 본 자가 지을 법한, 절망적인 두려움을 띤 눈빛.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혹시, 그 영감탱이가 말한 그 역사를 연구했다던 자가,
사실은 친구가 아니라면? 
뭐지 이 소리는? 마치 수많은 칼로 나무를 쿡쿡 찌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

[붉은 두 점의 비밀 #2에서 계속]

 

[경향게임스=게임이슈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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