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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잠든 사이(feat: 자동사냥)

  • 김상현 편집국장 aaa@khplus.kr
  • 입력 2021.10.08 17:47
  • 수정 2021.10.0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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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온라인 MMORPG가 득세하던 2000년대 후반, 게임사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 중에 하나가 불법프로그램이었다. 일명 ‘오토’라 불리던 이 프로그램은 이용자들의 직접 캐릭터를 콘트롤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돌리면, 캐릭터가 혼자 알아서 사냥을 진행하는 기능을 탑재했다. 이를 이용해, PC 1대로 여러 계정을 돌리면서 소위 말하는 ‘작업장(게임 내의 재화를 획득해서 이용자들에게 파는 집단)에서 게임 사용하는 재화를 대량으로 수급해 다시 재판매하는데 악용됐다. 

게임사들은 불법프로그램과 전쟁을 선포할 만큼, 강력하게 대응했다. 불법프로그램이 발견되면 이를 막는 패치를 진행하고 사용한 이용자의 계정을 영구정지 시키는 등의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불법프로그램은 게임사에서 막으면 다시 새로운 버전을 업그레이드 하면서 다시 빈틈을 파고들었다. 현재도 몇몇 PC온라인게임에서는 불법프로그램과 끝없는 전쟁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모바일 플랫폼이 대세가 되면서 게임사들은 MMORPG에 기본으로 자동사냥 기능을 추가했다. 모바일기기라는 특성상, 장시간 게임플레이가 힘들다는 표면적인 이유를 내세웠지만,  비즈니스모델(BM)이 ‘Play to win(많은 시간을 할애하면 강해지는)’이 아닌 ‘Pay to win(돈을 쓴 만큼 강해지는)’으로 바뀌면서 굳이 자동 사냥 기능을 막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개인 간의 거래를 전면 금지하면서 작업장들도 자신들이 투자한 만큼의 시간대비 비용을 뽑지 못하고 점차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자동사냥’ 기능이 이용자들에게 좋은 반향을 일으키자, 이제는 인공지능(A‧I)를 탑재해, 게임에 접속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사냥’하는 모드까지 추가시켰다. 인공지능 모드 추가는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특히, 게임플레이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은 직장인들은 환호했다. 이제는 내가 지정해 놓으면 24시간 동안 캐릭터가 알아서 ‘사냥’을 진행하고 레벨업은 물론, 획득한 재화까지도 자동으로 인벤토리에 차곡차곡 쌓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용자는 가끔 접속해, 캐릭터의 상태를 체크하고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아이템 정도만 다시 넣어주면 된다. 

RPG 장르의 가장 큰 재미 중 하나는 캐릭터를 육성하는 것이다. 육성을 통해, 다른 이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공성전 등과 같은 앤드(AND) 콘텐츠에서 승리는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다. 다양한 육성 방법이 존재하지만, 필드에 흩어진 몬스터를 사냥해서 레벨을 올리는 것을 가장 기본으로 한다. 

사냥의 재미도 처음에는 신선하지만, 수십만 마리의 몬스터를 사냥하다보면, 누구나 지치게 된다. 이에 자동사냥으로 지루한 부분을 삭제하고, 이용자는 핵심 콘텐츠(공성전, 보스 레이드 등)만 즐기면 된다. 

이렇게 편리한 ‘자동사냥’이지만, 정형화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 또한 적지 않다. 제일 심각한 것이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다. MMORPG의 특장점 중 하나인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줄어들고, 소속된 집단(길드, 혈맹)에서도 이용자들이 강한 유대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를 보안하기 위해서 메이저 집단들은 SNS를 적극활용하고 있지만, 예전만큼의 끈끈함을 찾아보기 힘들다. 하루하루 게임사에서 주어진 미션정도만 1시간 미만으로 플레이하고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자동 사냥’을 돌리는 것 모바일 MMORPG 현주소다. 일주일에 한번 있을 대규모 전투를 위해 그냥 주구장장 사냥하고 이를 발판으로 캐릭터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여기에 이용자들이 다시금 지루함을 느끼고 있다. 게임을 하고 있는데, 즐겁지 않다는 것이 그들의 중론이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시스템은 없다. 기자 역시,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자동사냥’을 돌리고 있다. 아직까지는 뚜렷한 대안이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계속 이런 패턴을 반복할 수는 없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 내가 ‘잠든 사이에 캐릭터가 사냥하는 것’이 아닌, 내가 깨어있을 때, 내 캐릭터와 교감을 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경향게임스=김상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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