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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 게임의 딜레마, ‘리얼리티’를 말하다

  • 안일범 기자 nant@khplus.kr
  • 입력 2021.05.2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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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축구 감독을 한번 쯤 꿈꿔 봤을지도 모른다. 이를 충족시켜줄 축구 감독 게임도 존재한다. 게임속에서는 누구나 뛰어난 감독이 돼 세계 축구계를 재패한다. 유저들은 이 게임에 더욱 현실적인 조건들을 적용해 달라고 요구한다. 보다 재미있는 게임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개발사는 이 요구를 들어 조금 더 현실적인 온라인 축구 게임을 개발했다. 수 천명 감독들이 한데 모여 구단을 운영하고 선수를 스카웃 해 자기만의 선수를 만드는 프로젝트. 비록 게임이지만 감독으로서 능력을 가리는 게임이니 현실판 축구 감독과 어쩌면 유사한 게임인지도 모른다. 서로 보유한 능력을 기반으로 선수를 육성하고, 뛰어난 선수들을 내세워 전략전술을 가리는 감독 대전. 그렇다면 이 프로젝트가 성공했을까.

결말은 쉽게 짐작 가능하다. 상상속에서는 너도 나도 히딩크나 클롭 감독이지만, 현실의 나는 그저 게임 좋아하는 게이머 아닌가. 평범한 게이머들은 순식간에 패자가 됐고, 결국 소수 승자들만 남아 게임을 즐겼다. 

현실적인 문제는 더 있었다. 당대 최고 스타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도는 가상 현실 세계에서도 단 한명 뿐. 수천 명이 경쟁하는 감독 대전에서 전설적인 선수들이 내 팀에 들어 올리는 만무하다. 그렇다고 리오넬 메시를 수십명 집어 넣을 수는 없는 일이다. 설사 능력치는 같다 한들, 느낌이 같을리도 만무하다.

결국, ‘리얼리티’ 그러니까 현실성을 추구하는 게임은 해 보면 즐기기 보다는 ‘고통 스러운 경험’에 가까웠다. 

같은 경험은 현재 가상현실상에서도 할 수 있다. 현재 시점에서 가장 현실과 가까운 가상현실 FPS게임 체험을 상상해보자. 게임을 즐기는 절대 다수는 결코 은폐와 엄폐를 하지 않으며, 엎드려 쏴냐, 앉아 쏴 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 유저들을 상대로 현실적인 적을 집어 넣으면 순식간에 게임 오버될 것이 틀림이 없다. 그렇다고 난도를 높이는 순간 유저들은 엎드러쏴나 앉아쏴 대신 로그 아웃을 택한다. 그러면서도 ‘리얼리티’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으니 이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다. 

수 많은 유저들이 원하는 VRMMO 소위 버추얼 MMORPG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가상현실 속 캐릭터는 걸어야 한다. 몰입감과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서는 마을에서부터 던전까지 걸어야 한다. 최소 마을에서 텔레포트 지역까지는 걸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 큰 마을을 걸어다니는 행동이 즐거울까?

또, 몬스터를 잡기 위해서는 칼을 휘둘러야 한다. 일반 게임에서야 마우스를 한번 클릭하면 그것으로 족하지만, 가상현실상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일단 칼 위치까지 손을 뻗고, 칼을 집어서 칼집에서 빼야 한다. 발로 걸어서 적 근처까지 걸어가야 하고, 그 다음엔 칼을 휘둘러야 한다. 그렇다면 레벨 업을 하기 위해서는 칼을 몇 번 휘둘러야 할까. 야구 배트를 들고 휘둘러 본 경험이 있다면, 이를 치환해 검을 들고 몇 번 까지 휘두를 수 있을지를 이야기 해 봐야 한다. 과연 그 ‘검술’이 생각 만큼 재미있을까.

설사 체력이 대단해 검을 휘두를 수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지나가던 검을 휘둘러 사람을 벨 수 있을까. 아니 지나다니는 강아지를 벨 수 있을까. 아니 평범한 바퀴벌레를 벨 수 있을까. 

대다수 경우에서 평범한 인간의 상상은 디테일까지 도달하지 않는다. 때문에 상상할 때와 직접 마주했을 때 간극은 언제나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이 간극이 점차 조금씩 좁혀져 합의점에 도달할 때 비로소 본격적인 가상현실 시대가 막이 오를 것이다. 

 

[경향게임스=안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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